본문 바로가기
디자인

디자인사 part.2

by 소담스러운 2024. 7. 11.
반응형

2. 근대 디자인사

(1) 미술공예운동(art and crafts movement)

① 미술공예운동은 19세기 후반 존 러스킨의 영향을 받은 윌리엄 모리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1857년 친구인 웹(Philip Webb)과 함께 런던의 외곽에 레드하우스( Red House)를 건축하였는데, 이것이 모리스를 디자인으로 향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러한 경험으로 1861년 "모리스 마샬 앤드 포그너 상회"를 설립합니다. 관리자와 공장장을 겸하면서 여러 생활용품의 디자인에 전력을 다한 모리스는 전통적인 수공으로 벽면 장식이나 조각, 스테인드글라스, 금속 세공과 가구를 제작하였습니다.

② 모리스는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에 반대하였고 산업혁명에 따른 기계화에 반발했습니다. 미술공예운동은 품질 회복 운동으로 수공예품 사용을 권장한 모리스는 20세기 디자인 공예운동의 선구자로서 근대 디자인사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③ "민중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였으며 "산업 없는 생활은 죄악이고 미술이 없는 산업은 야만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심미적 이상주의 사상에 뿌리를 둔 사조 예술의 적극적인 사회화·민주화를 추구하였지만 결국 지나친 수공예와 고딕 양식의 찬미로 인해 영국의 근대 디자인 운동을 반세기 늦추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수공예에 의한 생산은 높은 비용과 소량 생산이라는 이유로 대중의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해 결국 귀족화로 몰락합니다.

④ 미술공예운동의 색채는 올리브그린, 크림색, 어두운 파랑, 황토색, 검은색 등으로 톤이 어둡거나 칙칙한 색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2) 아르누보(art nouveau)

① 19세기 말 서유럽은 산업혁명을 통해 빠른 경제성장을 이뤘고 사회적으로는 다가오는 20세기의 새로운 미술 양식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의해 아르누보 운동은 미술상 사뮤엘 빙의 파리 가게 명칭에서 유래되었으며 벨기에에서 시작되어 프랑스를 비롯한 범유럽적인 예술운동으로 전개되었습니다.

② 아르누보란 '새로운 예술'을 의미합니다. 공예상의 자연주의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운동은 양식미를 특히 강조하였는데, 신선하고 자유분방한 조형운동으로 양식미만을 주체로 하여 창조된 공예 형태로 식물의 형태를 모티브로 한 유동적인 모양의 공예 양식이 도입되었습니다.

③ 1900년대 전성기를 이뤘으며, 윌리엄 모리스의 영향을 받았고, 헨리 반 데 벨데에 의해 발전하였습니다. 유기적 형태에서 출발하여 구성적인 자연을 주제로 강한 호소력을 가집니다. 대표적인 작가로 독창적이고 화려한 장식을 사용한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가 있습니다.

④ 아르누보는 나라마다 뱀장어 양식, 국수 양식, 촌충 양식, 귀마르 양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독일에서는 '유겐트스틸', 프랑스에서는 '기마르 양식', 오스트리아에서는 '제체시온스틸', 이탈리아에서는 '스텔레 리베르티', 스페인에서는 '모데르니스타'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호칭 외에도 각 지역에 따라 30여 개에 달하는 호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⑤ 아르누보는 공예와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제조되었고 새로운 소재의 결합과 담쟁이덩굴, 수선화, 단풍나무, 잠자리, 백조 등의 장식 문양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자연물의 유기적 형태를 빌려 건축의 외관, 가구, 조명, 실내장식, 회화, 포스터 등을 장식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⑥ 아르누보는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연한 파스텔 계통의 부드러운 색조를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3) 유겐트스틸(jugendstill)

① 독일 아르누보 운동의 양식과 경향에 대한 호칭으로 청춘 양식이라는 뜻입니다. 1896년 뮌헨에서 발행되던 미술잡지 유겐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종래 공예의 모방적 경향에 대한 반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② 유겐트스틸은 식물적 요소인 꽃, 잎 등을 주로 사용하여 곡선의 변화와 율동적인 패턴에 의해 추상화·양식화된 점에 특색이 있으며 프랑스의 아르누보에 비하여 중후한 양식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평면성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디자인 의지는 현대미술 탄생의 한 원칙이 되었습니다.

③ 유겐트스틸의 선구자로는 벨기에의 건축가 헨리 반 데 벨데를 비롯하여 독일공작연맹의 선구가 된 피터 베렌스, 그리고 1910년 브뤼셀 박람회에서 18세기 후기 양식의 가구를 디자인하여 선풍을 일으키고 상감기법과 유니트 가구를 선보였던 파울 브루노, 독일의 타이포그래퍼 겸 디자이너로서 오늘날 아르누보 양식의 이론가로 알려진 엑크만 등이 있습니다.

 

(4) 분리파(secession)

①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난 신예술 조형운동인 시세션은 반아카데미즘 미술운동으로 라틴어 'Secessio plebis'에서 유래된 말로서 로마의 시민이 집정관에 대하여 저항한 시위운동을 의미합니다. 권위적이고 세속적인 과거의 모든 양식으로부터 분리를 주장하며 자신들의 작품에 고유 이름을 새겨 넣어 생산된 제품의 품질과 디자인에 신뢰성을 부여했습니다.

② 시세션은 "탈퇴, 분리하다"란 뜻을 가지며 건축가 외에 공예가, 화가, 조각가 등이 함께 참여하였으며 구예술의 관료적 아카데미즘에서 인습을 배제하고 개성을 중시했습니다.

③ 시세션 운동의 중심인물은 오토 바그너와 그의 제자 조셉 호프만이며,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근대 공학 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변화를 예리하게 의식한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지도적인 인물이었던 오토 바그너는 "모든 새 양식은 새로운 재료, 새로운 과제 및 생각이 기존 형식의 변경 또는 신형식을 요구하는 데서 성립된다"면서 "예술에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④ 주로 직선적이고 단순한 형식의 장식을 사용, 식물의 편화 무늬 등으로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오토바그너는 "실용되지 않는 것은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는 명제를 확신하고 실용과 미의 조화를 강조하였으며, 공예의 기능주의를 바탕으로 양식은 결정된 개념방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근대 생활이 요구하는 필연에서 조형으로써 성립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출처 2022 컬러리스트필기 기사·산업기사 이론서, 조영우 지음)

 

반응형

'디자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자인사 part.5  (0) 2024.07.13
디자인사 part.4  (2) 2024.07.12
디자인사 part.3  (0) 2024.07.11
디자인사  (0) 2024.07.10
디자인의 정의  (1) 2024.07.10